해피투게더

마감 지난 '이민자의 노래'

원이아빠 1 496

지난 시월 말로 이민자 수기공모가 마감 되었지요. 저도 방송과 다른 매체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서 그간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 한두개를 꺼내 공모에 참가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고 낙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망설이기만 하다 마감 기한이 지나버렸습니다. 

혹 제 사연이 방송에 소개되어 청취자분들께서 들으시거나, 혹은 게시판을 보시는 분들과 공유 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란 생각에 늦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대한 걱정없이 해피투게더 게시판에 사연을 올려봅니다. 

  

제 아내의 직업은 간호사 입니다. 옆에서 보면 간호사들이 하는 일은 참 다양합니다. 흔히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간호사를 필요로 합니다. 그 중 하나가 홈케어 입니다. 운전이 힘드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셔서 직접 병원을 오가는 것이 어려운 노인분들을 위해 간호사가 가정을 방문하여 환자의 병세와 차도를 확인하여 의사에게 전하면 의사가 그에 따라 처방이나 처치를 내려 환자의 건강을 도모하는 제도입니다. 

 

아내가 매주 방문하던 환자분 중에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여든이 지나신 나이에 심장이 좋지 않아 심장박동을 보조하는 페이스메이커(pace maker)를 부착하신 분이었습니다. 처음 환자와 간호사로 만났을 때는 어색하였지만, 매주 방문해서 뵙다보니 어느새 아내의 방문을 기다리시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할머니와 아내는 이런 저런 신변 잡기나 한국 TV드라마 이야기로 수다를 떠시기도 하셨고 영어로 쓰인 편지가 무슨 내용인지 물어보기도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어떤 사연이 있으신지 자식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정부아파트에 거주하셨습니다. 정부 보조금과 한달에 $50 남짓 나오는 푸드스탬프로 생활비를 충당하셨지만 마음만은 넉넉하셔서 맛있는 반찬을 해서 항상 이웃과 나누곤 하셨습니다. 종종 김치나 장아찌를 담으셔서 식구들이랑 먹으라고 아내에게 들려 보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께서 제일 힘들어 하시는 계절이 여름이었습니다. 음식하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시기에 장을 보러 오가시는 길에 운전을 하셔야 되는데, 할머니의 차에 에어컨이 시원찮아 여름이면 차가 그야말로 찜통이 되는 까닭이었습니다. 그 해 여름 할머니께서 제 아내더러 너무 미안해 하시면서 돈 $100을 좀 빌려 줄 수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너무 더워서 차량 에어컨 수리를 알아보셨는데, 그 정도 돈이 부족하셨던 모양입니다. 고맙게도 아내가 아무 고민 없이 $100을 드리면서 갚으실 생각일랑 하지 마시고 차 잘 고치셔서 시원하게 다니시라고 말씀을 드렸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아내와 정을 나누셨고, 종종 해주시는 맛난 반찬을 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곤 했습니다. 한번은 아내가 음식을 받기만 하는게 너무 죄송해서 마켓에서 사용하실 수 있는 상품권을 감사의 표시로 드렸더니 기억력이 좋질 않아 다 쓰지 못하고 잃어버리실까 걱정을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여름 어느 날 할머니께서 고추장아찌를 담아서 보내주신 적이 있습니다. 고추장 단지를 잘 씻어 두셨다가 거기에 장아찌를 담그시고는 양념에 잘 잠기라고 나무 젓가락으로 고추를 가득 눌러 담아서는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먹지 말고 좀 두었다가 익으면 먹으라는 당부와 함께 말입니다. 단지를 받아 드는데, 누구에게 주실건지 잊지 않고 기억하시려 비뚤한 글씨로 '가노사' 라고 적어 뚜껑에 붙여두신 반창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글씨에서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내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는 아내는 통화 내내 '네..네..네..' 라는 짧은 대답만 이어갔습니다. 통화가 끝난뒤 아내가 한 참 동안 시무룩 하니 있길래, 무슨 전화였나 궁금해진 제가 물었습니다. 

"무슨 전화야?" 

아내의 대답은 

"반찬 해주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대." 

저도 아내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만 흘렀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음식할 재료를 사시러 장에 다녀오셔서는 피곤하셨던지 의자에 앉으셔서 쉬시던 중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듯 하다고 나중에 전해들었습니다. 평소 박동 보조기를 달아야 할 만큼 좋지 않았던 할머니의 심장이 결국 멈추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장례식에 다녀왔고, 가족이 없으셨던 할머니의 장례식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찾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비슷한 처지의 이웃들과 할머니의 반찬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던 분들이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 했겠지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후,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담아 주셨던 고추 장아찌 단지를 손에 들었습니다. 그 비뚤한 '가노사'라고 씌어진 반창고가 전보다 더 눈에 밟혔습니다. 잘 익혀서 먹으라고 할머니가 당부도 하셨는데, 그리고 분명 잘 익어서 이제 너무 맛있을텐데, 그 반창고가 눈에 밟혀 열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억지로 참았습니다. 이제 벌써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6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가노사'라고 씌어진 반창고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잊혀져서 제 마음이 좀 편해질 수 있을까요? 아마 영원히 못잊을것 같습니다. 

 

남겨진 가족도 없고, 자식도 없고, 가난하셨던 할머니의 삶을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돋보이는 삶이었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셔서 아직도 제 가슴속에 기억되고 있습니다. 할머니를 기억하는 것이 단지 저 뿐일까요? 할머니가 정을 나누셨던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그리고 앞으르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곳 텍사스 뿐 아니라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민자들 중에는 주류사회에서 비교하더라도 돋보일 만큼 사회적 업적이나 경제적 성취를 크게 거두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의 사회경제적인 성공뿐 아니라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 바로 저 할머니와 같이 주변 사람들과 따뜻히 정을 나누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입니다.  

저도 돋보이는 삶 보다는 할머니처럼 정다운 이웃으로 기억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Comments

영스러움
음......이 먹먹함은 뭘까요? 목이 뻐근해지고 눈앞이 흐려지는 이 슬픔은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요?

답글을 써야하는데....너무 맘이 아파서...그리고 답답해서 한동안 자판위에 손가락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홀로 투병하고 계신 시어머니와 오버랩이 되어서 이렇게도 진한 슬픔이 솟구쳐 올라오는 게 아닐까...싶어집니다.

함께 정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참으로 고귀한 신의 선물입니다.
할머님도 그걸 아셨던 분일 거에요. 숨이 차오르고 곧 심장이 멎는다하더라도 그립고 보고픈 누군가를 떠올리며 정성껏 만들어 주고 싶은 그 누군가가 있다는게 하늘의 선물임을요...외롭지 않을셨길요..그리고 그 분을 추억하는 많은 분들 덕에 오늘도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하는지 알게 해주셨으니 할머님은 그 분의 역할을 다하고 가신 걸거에요.

게시판에, 그것도 해피 투게더 게시판에 이렇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연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내 마음에 욕심이란 녀석이 나오려할때마다 감사함이 사라질때마다 꺼내 읽고 반성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늘 소통하며 사랑하며 정을 나누는 마음이 아름다운 DJ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해요~원이아빠님~~